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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의 목표 - 미하엘 엔데
 북카페를 처음 가보았다. 삼청동의 '내서재'. 큰 카페는 아니었지만 정말 재미있는 책들이 많이 있는 곳인것 같았다. '스트라디우스'도 사실 이 곳에서 읽었다. '자유의 감옥'이라는 책은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판타지스러운 느낌을 주는 미하엘 엔데의 중편(?혹은 단편)소설의 모음집이었다. 이것 저것 다 읽을 시간은 없어서, '긴 여행의 목표'라는 글과 제목이 끌려서 보게 된 '자유의 감옥'을 골라보았다. 사실, 생각할 메세지들이 이것 저것 꽤 되어서, 다 정리하긴 어렵지만, 일단 '긴 여행의 목표'부터 느낌점만 생각해보자.

 긴 여행의 목표의 주인공 시릴은 외교관의 아들로 매우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호텔을 전전하며 살아온 '부유하지만 집이 없는' 사람이었다. 돌아갈 곳이라는 개념은 그에게는 없었다. '집'이란 돌아갈 곳, 편안함, 무방비 상태로 자신을 노출시킬 수 있는, 나를 받아주는 등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곳이 바로 '돌아갈 집'이 아닐까? 그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런 그가 '돌아갈 곳'에 대한 갈망의 목표를 찾기 시작하자, 그는 냉정하게 한 가정과 10여명의 사람들을 파멸시키면서까지 자신이 돌아갈 '그 곳'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어떤 고통도 마다않고, 그는 '그 곳'을 찾아 나아간다. 설사 자신의 목숨을 잃을지라도...


 돌아갈 집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회귀할 수 있는 곳, 내가 돌아갈 그 곳, 그 것이 없다면 우리 삶은 안정성을 잃는다. 끝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어진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 모든 권력과 명예와 돈도 그에겐 쓸모가 없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돌아갈 집은 어디인가? 크리스찬인 내가 최종적으로 돌아갈 그 곳. 사실 크리스찬이 걸어갈 길은 타인을 파멸시키는 길과는 관계가 없지만(오히려 도덕적으로 바른 길이겠지만), 그에 못지않는 자신의 희생은 필요하다. 물론 대부분은 예수님이 지셨으나, 나 또한 믿음으로 걸어갈 때, 어느 정도의 댓가, 내가 지어야할 십자가를 예상해야한다. 하지만, 집에 가는데 그 정도가 대수랴? 우리가 거할 소망이 있는 그 곳으로 걸어가는데, 그리고 그 걸음 걸음이 세상에서 빛이 되는 길이라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하지 않을까?

 또 하나 생각할 점은 '내가 바랬기에 그것이 있는 것이다'라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이 바라는 그 곳이 '원래 있던' 곳이 아니라 '바랬기에 있게된' 것이라는 논리. 즉 우리의 소원이 그 대상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였다.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닌가. 여기서 나는 성경에 나오는 구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실 '원하기에 있는 것이다'와 '원하는데 이미 있었던 것이었다'는 서로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어찌보면 둘 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있는 사실을 자신의 원하는 여부에 따라 '존재'하고 또는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오지에 어떤 알 수 없는 종의 생물이 있다고 하자.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그것은 '없는 것'이다. 또,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의 주인공이 너무 실감나게 다가온다고 치자. 어떤 사람들에게 그 영화의 주인공은 실제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경우도 있다. 또, 어떤 부유한 집에서 자란 사람이, 파산해서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부인하고 과거만 바라보며 현재의 모습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그런 경우를 우리는 보게 된다. 즉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치가 있는 것만 '존재'하게 하려고 하는 경향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사실 삶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진실에 직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쨋든 어찌보면 그 사람에게는 원하기에 있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미 있는데 원하는 것이었기도 하다. 아마 합쳐본다면 결론은, '이미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할 때 그것은 비로소 우리에게 있는 것이 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는,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 이것은 꽤 중요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목소리는 존재한다.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성경 말씀에서도, 우리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것은 '없는' 것이다. 삶에서 사실 세상의 유혹적인 목소리에 반응하며 나 스스로 하나님의 목소리보다 그것들을 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 우리에게 그 목소리는 없는 것처럼 치부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 것을 원하게 되고 바랄 때, 하나님은, 그 사랑의 목소리와 함께 비로소 우리에게 실감나게 '실제로' 다가오게 된다. 그렇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우리가 쉽게 경험하기 힘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사람이 어떠한 목적으로 이 글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생각한 것들이 다 있지는 않겠지만 곰곰히 생각을 하다보니 오히려 나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들이 생긴 것 같다. 나는 아직 더 하나님을 바라야만 하나 보다.^^
긴여행의목표, 미하엘엔데, 믿음은바라는것들의실상
# by 겨자씨앗 | 2007/10/07 23:01 | BoOk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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